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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삶이 흔들리는 순간이 있어요. 곧 60살이 되는 저도 엄청 흔들리거든요. 특히 인공지능(AI)으로 급변하는 지금은 더욱 불확실한 시대잖아요. 그래서 청년들에게 ‘흔들리지 말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흔들리더라도 방향성을 잃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나아가자고 말해주고 싶어요.”

오랜 기업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자립준비청년들의 경제 멘토로 활동해온 유병선 멘토가 재단법인 한사람과 인연을 맺은 것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대인경제연구소 회원으로 활동하며 재단이 설립되는 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봤고, 지난해 재단으로부터 멘토 제안을 받자 흔쾌히 응했다.

그는 두 명의 자립준비청년과 연결돼 한 달에 한 번씩 만났다. 청년들을 만나며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경제와 투자에 관한 지식이나 조언만이 아니었다. 필요할 때 기댈 수 있는 ‘곁에 있는 어른’이 되어주는 일이었다. “청년들이 제 자녀들과 나이대가 비슷하다 보니 훨씬 더 마음이 가고, 대견하기도 했어요. 내가 옆에 있는 어른이라는 걸 알게 해주고 싶었죠. 그런데 오히려 제가 그 친구들에게 배우고 얻는 게 많았어요. 너무 독립적이고, 정말 열심히 사는 친구들이더라고요.”

유병선 멘토가 청년들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지속성’이었다. 한 번 나타났다가 금세 사라지는 어른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주고 싶었다. 청년들이 살아오면서 이벤트처럼 찾아왔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는 어른들을 적지 않게 경험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멘토링 기간이 끝난 지금도 생일을 챙기고 안부를 묻는 등 꾸준히 연락을 이어가는 이유다.

그가 청년들과 함께한 활동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66일 챌린지’다. 10명의 자립준비청년이 매일 자신이 정한 좋은 습관을 실천하고 단체 대화방에 인증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누군가는 일기를 쓰고, 누군가는 성경을 읽었으며, 또 누군가는 영어 공부를 하는 인증샷을 올렸다.

원래 청년들만 참여하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유병선 멘토도 자원해 함께했다. 그는 매일 사자성어나 속담, 올바른 우리말 표기법 등을 하나씩 골라 직접 손으로 써서 사진을 찍어 올렸다. 나중에는 투자와 독서, AI 공부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글을 써서 공유했다. 미래가 막막하게 느껴질 때 자신은 어떻게 견뎌왔는지에 대한 글도 써서 올렸다.

그렇게 66일 동안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은 이 친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들려주면 좋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일과이자 하나의 루틴이 됐다. “그 과정이 저에게도 굉장히 소중한 시간이 됐어요. 청년들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유병선 멘토의 본업은 오랫동안 에너지·자원 분야였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에너지 대기업에 오래 근무하다 2006년 인도네시아로 파견됐고, 이후 독립해 자원·에너지 개발과 트레이딩 사업을 시작했다. 인도네시아에서 10년 넘게 사업을 이어갔으며, 이후에는 에너지·자원 분야 컨설팅과 인도네시아 기업의 한국 관련 업무 등을 해왔다.

내년이면 예순. 자녀들도 모두 독립한 그는 이제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을 앞두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16과목의 수업을 듣고 160시간의 실습도 마쳤다. 심리상담소에서 장애인 가족과 사회복지사, 음악치료사 등을 만나며 앞으로 자신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많이 배웠다.

재단법인 한사람에서의 멘토 활동과 사회복지사 실습을 거치면서 그의 생각은 한 방향으로 모아졌다. 앞으로 청년들을 돕는 사회적 기여 활동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청년들에게 보다 전문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현재는 직업상담사 공부도 하고 있다.

재단법인 한사람의 공식적인 멘토 활동이 끝난 뒤에도 그는 재단에 먼저 “청년들을 많이 만나고 싶으니 기회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이후에도 청년 프로그램에 참여해 옆자리에 앉고, 함께 밥을 먹으며, 필요한 일이 있으면 자신의 손을 보탠다.

돌이켜보면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향한 그의 마음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에 ‘사회사업가’라고 답하기도 했고, 인도네시아에 살던 시절에는 한인교회에서 13년가량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다.

어쩌면 지금의 선택은 전혀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일이 아니라, 오래전 마음 한구석에 심어두었던 꿈을, 이제야 다시 꺼내어 걷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글 김아리 한겨레신문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