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에게 가장 부족한 건 돈보다도 ‘어른’입니다.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어른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가장 큰 결핍입니다.”
최상규 대표가 2015년 자립준비청년 지원 단체 ‘선한울타리’를 설립한 이유다. 선한울타리는 현재 전국 32개 교회와 연계해 약 300명의 자립준비청년을 지원하고 있다. 멘토링을 중심으로 신앙훈련, 주거 지원, 식재료비 지원, 자립 물품 지원, 교육비 지원, 법률·의료 지원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인 사후관리 체계를 갖추고 있다.
최 대표는 “자립준비청년들은 대부분 어른에 대한 신뢰 자체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 부모와의 분리를 경험했고, 시설에서도 양육자가 반복적으로 바뀌는 일을 겪어요. 그러니 처음부터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죠. 그래서 억지로 빨리 가까워지려 하지 않습니다. 그냥 함께 밥을 먹고, 오래 이야기를 들어주며 시간을 보내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이 사람은 나를 도우려는 사람이구나’ 하는 신뢰가 생기고, 그때 비로소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최 대표가 자립준비청년 사역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우연히 접한 신문 기사였다. 그는 당시 다니던 교회에서 보육원 아이들을 돕는 봉사를 하고 있었다. 방학마다 보육원 아이들을 가정에 초청해 함께 생활하고, 디딤씨앗통장을 만들어주는 활동도 펼쳤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시설을 떠나 홀로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을 깊이 체감하지는 못했다.
“어느 날 신문 사회면 한쪽에 아주 작은 기사가 있었어요. ‘보육원 퇴소생’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걸 읽고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죠. 내가 만나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세상 밖으로 혼자 내던져지는구나, 그 사실을 처음 실감한 거예요.”
그는 이후 1년 가까이 고민하고 기도한 끝에 본격적으로 자립준비청년 사역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의 본업은 사회복지나 목회가 아니다. 그는 무역업을 하는 사업가다. 그럼에도 본업보다 무급 자원봉사로 운영되는 선한울타리 활동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다.
그가 말하는 ‘진짜 자립’은 단순히 취업하거나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자립준비청년이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자신의 아이를 안정적으로 양육해내는 단계까지 가야 비로소 진정한 자립이라고 본다. 그는 자립준비청년 지원을 단순한 복지나 후원의 문제가 아니라 “해체된 가정을 다시 회복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시설에 가게 된 이유 자체가 가정 해체잖아요. 아이들이 나중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다시 가정을 이루는 것까지 가야 진짜 회복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선한울타리의 지원을 받았던 청년들 가운데서는 결혼과 출산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그는 “그럴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 대표 역시 어린 시절 평탄한 가정 생활을 누리지 못했다. 그는 아버지의 두 집 살림과 가정폭력,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성장했다. 누구보다 안정된 가정의 소중함을 절실히 알기에, 두 자녀를 입양하기도 했다. “가난보다 더 힘들었던 건 깨진 가정이었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가 싸우지 않는 집,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지 않는 집, 엄마도 한 명 아빠도 한 명인 집이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지금도 제 삶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늘 가정이에요.”
가정 문제 외에도 그는 적지 않은 고난을 겪었다. 20대 시절 화재 사고를 당해 8개월 반 동안 입원 생활을 했고, 화상 장애를 입었다. 그는 한동안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는 원망 속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
“문득 ‘내가 죽을 수도 있었는데 살아남았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상황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는데 원망이 감사로 바뀌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덤으로 얻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게 됐죠.” 그 고민은 훗날 입양과 보육원 봉사, 선한울타리 설립으로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고린도후서에 ‘하나님은 우리가 여러 환란 가운데 있을 때 위로해 주셔서, 우리가 받은 그 위로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신다’는 구절이 있어요. 환란을 겪을 때는 너무 괴롭고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경험 덕분에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게 되죠.”
12년 동안 자립준비청년 지원 사역을 해오면서, 비슷한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들과 단체들이 최 대표를 많이 찾아왔다. 한사람재단 설립 과정에서도 조언을 해준 인연으로 현재 한사람재단의 이사를 맡고 있다. 오랜 시간 자립준비청년들을 만나며 그가 가장 경계하게 된 것은 ‘조급함’이었다. 특히 자수성가한 어른일수록 멘토링 과정에서 쉽게 지친다고 했다.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오며 많은 걸 이뤄낸 분들은 아이들을 빨리 변화시키고 싶어 해요. 시행착오를 줄여주고 싶고, 어떻게든 성공하게 만들고 싶은 거죠. 그런데 그렇게 통제하려 들면 아이들도 굉장히 힘들어합니다.” 그 역시 초창기에는 번아웃을 겪으며 큰 마음고생을 했다. 이후 갈라디아서의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매 거둔다’는 구절을 되새기며 자립준비청년에 대해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선한 마음만으로는 오래 갈 수 없습니다. 결국 상대를 이해해야 하고, 이해하려면 공부해야 해요.” 현재 선한울타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멘토들의 ‘지속 가능성’이다. 혼자 헌신하다 번아웃되지 않도록 교회 공동체가 함께 부담을 나누는 구조를 만들었다. “혼자서는 오래 가지 못하고 멀리도 가지 못합니다. 함께하면 서로 지칠 때 격려해주면서 더 오래, 더 멀리 갈 수 있죠.”
최 대표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의외로 담담하게 말했다. “이건 실적을 내는 일이 아니잖아요. 저는 그냥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만큼만 가려고 합니다. 더 잘할 사람이 나타난다면 언제든 기꺼이 맡길 수도 있고요.” 거창한 비전과 목표를 앞세우기보다, 담담하고 담백한 그의 모습에서 진짜 어른의 품격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