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 뜻이 있는 사람은 돈이 없고, 돈이 있는 사람은 뜻이 없다.” 선대인 경제연구소장이 한때 인기 있었던 팟캐스트 ‘나는 꼽살이다’에서 남긴 이 말은 이른바 ‘선대인 명언’으로 회자돼 왔다.
그가 자산을 형성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한사람재단을 출범시킨 것이었다. 재단 출범 2주년을 앞둔 2026년 3월, ‘돈과 뜻’의 일치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 말을 했을 당시에는 제가 무언가 하고 싶은 뜻은 컸지만 돈이 없었어요. 그런데 돈은 있는데 뜻이 없는 사람을 비판해 놓고, 막상 제가 여유가 생긴 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우습잖아요.”(웃음) 선 소장은 한사람재단 출범 당시 5년간 50억원을 출연하겠다고 공언했다. 첫해 10억, 지난해 6억을 출연한 데 이어 올해는 14억원을 추가로 내놓을 계획이다.
일반 대중들에게 ‘진보적 경제 전문가’로 알려진 그가 이처럼 큰 결단을 내리게 된 배경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8년 바람직한 지방자치 모델을 구현해보고자 용인시장 더불어민주당 경선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그때 마음이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돈을 좀 벌어두면 언젠가 쓸 일이 있겠다’ 싶어 주식 투자를 시작했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제가 주식 투자에 꽤 재능이 있더라고요.”
코로나19로 인한 시장의 부침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상당한 수익을 거뒀다. 그 즈음, 아내와 오래전부터 나눴던 약속이 떠올랐다. “10년 전쯤부터 우리가 어느 정도 먹고살게 되면 재단을 만들어 주변을 돕자고 이야기했었어요. 마침 경제연구소 회원으로 알고 지내던 신용운 전국입양가족연대 대표님과 얘기도 나누고 종교사단법인 선한울타리 최상규 대표님도 소개 받으면서 자립준비청년 문제를 접하게 됐죠. 저희도 청소년 자녀를 키우는 부모이다 보니, 우리 아이뿐 아니라 또래 아이들이 함께 잘 자라야 우리 사회의 미래도 나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립준비청년 지원을 재단의 출발점으로 삼은 이유다. 앞으로는 보육원 아동과 한부모 가정 등 취약계층 아동까지 지원을 넓히고, 수백억원 규모의 출연을 통해 더 많은 ‘미래 세대’의 버팀목이 되겠다는 구상이다. 선 소장은 이를 두고 “그저 스스로 한 말을 지키려는 실천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이렇게 큰 금액을 내놓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의 돈에 대한 철학은 담담하면서도 분명했다. “돈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삶의 질을 더 높여주지도, 사람을 더 행복하게 만들지도 못합니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명확히 작동하죠. 실제로 저희 가족의 씀씀이는 예전과 큰 변화가 없거든요. 그래서 제가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돌려주고, 꼭 필요한 사람들이 요긴하게 쓰도록 하는 게 훨씬 더 값지게 돈을 쓰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한사람재단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필요한 연구와 활동에 대한 지원도 시작했다. “그동안 제가 ‘스피커’나 ‘라이터’로서 사회적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왔다면, 앞으로는 그런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동아일보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유학을 거쳐 경제연구소 소장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활동하며 ‘경제 민주화’를 꾸준히 주장해왔다. 대안교육으로 자녀를 키운 부모이기도 하고, 한때 정치에 도전하기도 했다. 지금은 성공한 투자자이자 공익 기부자로 또 다른 자리에 서 있다.
이 모든 삶의 궤적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그는 “세상이 깊은 갈증을 느끼는 것과 나 자신이 깊은 허기를 느끼는 것의 교차점을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전화위복의 과정이었다”고 회고했다.
“정의의 필봉을 휘두르겠다며 언론사에 들어갔지만 여러 제약과 압력에 부딪혀 아무 대책도 없이 회사를 그만뒀죠. 갓 태어난 아들도 있었는데 유학을 준비한다면서 아내와 가족들의 마음 고생을 많이 시켰어요. 그때 돈을 벌기 위해 온라인 포털에서 취재기자로 잠시 일하기도 했어요. 힘든 시간이었지만 덕분에 새로운 미디어도 빨리 접하고 외국 유학으로 경험도 넓히는 기회가 됐죠. 또 민주당 경선에서 떨어지면서 큰 좌절을 겪었지만, 그 경험이 없었다면 투자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고 재단 설립도 없었을 겁니다. 인생은 늘 좋기만 하지도, 나쁘기만 하지도 않아요. 인생의 힘든 구간을 견디다 보면 의미 있는 구간이 찾아온다는 걸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전하고 싶네요.”
아내 김태현 이사장과 달리 그는 재단에서 별도의 직함을 맡고 있지는 않다. 다만 올해부터는 재단 활동에 더 애정을 쏟을 계획이다. “아내가 아동복지학을 전공했고 사회복지사와 상담교사 경험도 있어 재단 운영에는 더 적임자입니다. 저는 그동안 재단의 재정 기반을 다지는 데 집중해왔다면, 올해는 재단을 더 널리 알리고 네트워크와 후원 체계를 확장하는 데 주력하려 합니다. 아울러 청년 세대를 위한 새로운 지원 방안도 고민해볼 생각입니다.”
글 김아리 한겨레신문 객원기자